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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2.26 회상

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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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밤 홀로 방에 앉아 이삿짐을 정리했다.

내 방에 싸야 할 짐의 80퍼센트가 책이다. 소설책, 수험서, 전공서적 등등

철지난 수험서와 잡지들을 꽤 여러 권 버리고 나서도 나의 책이라 이름붙여진 그 녀석들은

방 한 귀퉁이에 가득히 자기들끼리 옹기종기 자리를 틀어잡고 있다.

책들을 정리하면서 한 권 한권 사거나 읽었을 때의 설레임과 기억들이 차곡차곡 몰려온다.

 

'아, 그랬었지.', '음.. 이건 그 사람이 좋아한다던 책이지', ' 올커니 너만 정복했다면 지금쯤

꽤 성공한 인생이겠지' , '이 책 속의 주인공은 아직도 행복할까', ' 나는 왜 이 녀석을 보며

울었는가' 등등. 

내 속을 그 녀석들에게 비추어 보기도 하고, 책 속 주인공에게 마음을 들킨 것 같아 얼굴을

붉히기도 하고, 한 때 책 속에 주인공이 되었던 느낌이 떠올라피식 웃어보기도 한다.

그렇게 하나 하나 책을 정리해가며 한쪽에 정리된 잡지는 모두 버려야지 마음 먹었다.

두꺼운 책들을 모두 끈으로 보기 좋게 묶고 마지막으로 벽 한 귀퉁이에 모아둔 잡지들을 정리한다.

혹시 중요한 서류가 끼어져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속시원히 버리지는 못하고 한권씩 다시

재활용할 거리로 분류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지하철 가판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당시 한참 인기있던 여배우가

표지를 장식한 천원짜리 영화잡지가 눈에 들어왔다. 

갑자기 나의 손과 심장이 멈추어버리는 듯 하다. 지난해 여름 그가 무심히 심심함을 달래기 위해 들고왔고, 그 가치가 그리크지 않으므로 그리고 내가 읽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나에게 건낸 것이었다. 그렇게 그에게 나에게 아무런 이유 없는 잡지가, 내가 방 귀퉁이에두고 다시 펼쳐보지 않은 그것이 오늘따라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결국 버리지 못하고 퍼즐 상자 속에 생뚱맞게 담아둔다.

사실 지금도 별다른 큰 의미는 없다. 단지, 처음으로 말과 생각이 너무 잘 통한다고 느낀 사람이었고

자신의 이야기를 아무런 스스럼 없이 이야기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잠시나마 내 마음이 동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조금 더 가지고 있으리라. 다시 꺼내 볼 만큼 대단한 것이 아니란 것을 알고, 그에게 이를 매개로 만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또한 그것을 바라지도 않는다. 그의 말처럼 말이 잘 통했으므로 좋은 친구이면 참 좋겠는데

여자와 남자는 친구가 될 수 없나보다. 그는 그런가보다. 나는 아닌데..여하튼 지금 생각해보면 친구사이로써

그리 크게 잘못한 것이 없는데 원래 그랬던 것처럼 모르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그 잡지와 함께 그가 내게 건내준 제제의 친구가 있다. 별 다른 의미없이 그에게 필요가 없어 내게 준 것이다.

나는 마냥 좋아 받은 것인데 그와 친구가 될 수 없다고 생각했을 때  다시 돌려주어야 할, 나의 세계에 이물적인 존재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그런 고민을 하는 내게 친구가 해준 충고를 듣고 오늘 잡지를 보기 전까지만 해도 이물감없이 마냥 즐겁게 쓰고 있었던 내게 그 잡지의 표지를 장식한 여배우가 그에게 그것을  다시 돌려주어야 한다고 내게 소리친다.

 

그것이 진정 그에겐 별 다른 의미 없었는가...

그리고 나는 왜 구지 그것에 큰 의미를 담으려고 했던가..

.

.

.

.

.

다시 볼 거라 생각하여 모아둔 잡지를 한 꺼번에 끈으로 묶지 않은 내가 야속해진다.

또 다시 생각해버린 내가, 그리운 마음의 보따리를 풀어버린 나의 마음이 더욱더 야속해진다.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나아가지도 못하며, 점점 잊어버리는 내가 어쩔 수 없다고, 왜 그랬었냐고

계속해서 반문하는 내가 미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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