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를, 사랑합니다

2007/09/06

 

매번 골목방 출사가 있기 전에 그 놈의 책임감이 무엇인지, 작은 배려들을 위해 미리 사전답사길에 오른다.

여럿이 갈 때는 답사 때 봐둔 길을 미리 트여놓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에 총총걸음으로 빨리 걷지만 혼자

또는 소수의 인원으로 골목길을 나설 때는 어느 누구보다도 시간이 많이 걸리는 편이다.

그래서 그런지 원주민들에게 동네를 염탐하러 온  이상한 사람으로 빛추어질 때도 있고 때로는 신기한 학생즈음으로

비춰질 때가 있기도 하여 눈이 마주치면 잽싸게 '안녕하세요' 하며 작은 목소리로 인사하는 편이다. 그렇게 하다보면

가끔 원주민들 특히 어르신들과 대화할 기회를 많이 가진다.

 

그렇게 두런두런 사는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마치 친할머니에게 어리광을 부리는 손자마냥 길에서 넘어진 생채기를

보여드리며 다쳤다고 응을 부리기도 하고, 마치 언제 봤냐는 듯이 너스레를 떨어가며 여러 이야기를 청해 듣는다.

이번에도 그렇게 어김없이 강풀님의 만화 '그대를 사랑합니다'의 배경이기도 한 옥수동에서 어여쁜 할머님을 만나뵈었다.

이날따라 아침부터 시험에 떨어졌다는 통보를 시작으로 핸드폰을 버스에서 잃어버리질 않나 길을 가다 갈지자로 내림막 길에서

넘어지지를 않나 여하튼 정신이 삼천포에 빠진 날이었다. 그렇게 머리를 하얗게 비워가며 길을 걷고 있노라니 그 전날 부터 줄기차게

내리던 빗줄기가 멈추기 시작하고 맨 윗 골목집 문이 살짝 열리더니 어여쁜 어르신께서 고개를 빼꼼히 내미신다.

 

'학생들은 비 오는대 밖에서 뭐하누?'

 

'네, 골목길이 좋아서 사진 찍고 있어요.'

 

집앞에 작은 화단에 심어놓은 이제 막 열매를 맺은 풋고추를 손으로 만지작 거리시며

'어휴, 고추를 따서 말려야 할텐데' 하시길래

 

'아이고, 아직 따려면 멀었네요. 비가 와서 그런가..., 앗, 요거는 따서 바로 드셔도 되겠어요'

라고 동네 아주머니들이 모여서 할 법한 대화를 나누다가

친할머니께 말씀 드리듯이 '이렇게 경사가 심한 길 다니기 힘드시지 않으세요?'라고 운을 띄우고는

'할머니, 저 여기 오다가 다쳤어요' 하며 울쌍을 지으며 피로 붉게 물든 무릅팍을 보여드리니

'아이고, 어쩌다 그랬누, 조금 돌아가도 나는 좋은 길로만 찾아서 다녀' 하시면서

재빨리 집안으로 발걸음을 옮기시며

 

'잠깐만, 기둘려봐. 어딘가 반창고가 있을거야' 하시며 한참을 방에서 이것저것 뒤적이셨다.

고마운 마음에 그리고 마치 하루종일 왜 이리 하루가 사납냐 하는 생각을 떨쳐버리듯이 마음이

따뜻해져 한참을 서서 기다렸다.

 

할머니께서는 반창고를 들고 나오시더니

'내가 이것밖에 없어. 뭐 맛난거라도 대접못해서 미안허이'하시며 찬찬히 상처를 살펴보시며

내 마음에 난 상처까지 함께 어루 만져 주셨다.

반창고 이상의 무언가를 많이 받아간다는 생각에 너무 고마워 사진이라도 한 장 찍어드릴랑 치니

' 돈 아까우니 찍지말어, 늙은 노인네 찍어서 무엇하게' 하시며

손사레를 치신다.

기윽고 우겨서 할머니의 웃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는 하였으나 할머니는 연신 미안하다는 말씀을

되풀이 하신다. 그렇게 나누어 주시고도 무어가 계속 미안하시다는 건지 왠지 모르게 할머니의 살아온

날들을 짧게나마 듣고 있노라니 오히려 마음 깊숙한 곳에서 내가 더 미안하다는 마음이 목구멍으로

손을 뻗친다. 왜냐하면 할머니를 포함해서 지금의 어르신들이 일구어낸 이 번쩍번쩍 거리는 서울 하늘 아래서 

점점 구석으로 그들을 내몰고 있는 현실에 대해 침묵하고 있는 젊음에 미안해졌기 때문이다.

지금 점점 더 회의가 느껴지는 길이지만, 그래서 그런지 침묵을 그들을 위한 작은 외침으로 만들 수 있게 하기

위해 무언가 시도해야 하는 때가 아닐까, 그리고 좀 더 적극적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 

'사람이...' 나의 사진 철학이다라고 더욱 더 확실히 느낄 수 있게 만든 이 만남에서

내가 앞으로 해야할 것과 할 수 있는 것에 대해 고민해본다.

 

골목길, 말하다.

 

 

 

 

 

이건 여담이지만...

요즘들어 어르신과 대화하며 자주 듣는 이야기인데

과연 정부에서 하고 있다는 방대한 복지정책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 의문이다.

옥수동에서 만난 어르신께서도 말씀하셨지만 20만원으로 한겨울을 나기란 언발에 오줌누기 식이

아닌가 싶다. 병원에 가기는 커녕 그곳에 가는 교통비도 체 되지 않으니 누가 어떻게 책정한 금액인지

속 시원히 설명해줬으면 좋겠다.

좀 더 구체적이며 포괄적인 정책, 마음이 따뜻해지는 정책이 만들어져야 하지 않을까...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렇게 사진을 올리는 것이 실례되는 일은 아닐지..

하지만 그 미소가 너무 아름다워 지나칠수가 없었다.

이번 주에 만나뵙기로 했는데, 그 때는 남짓이 누구의 아내 또는

누구의 엄마로 불리었을 그녀에게 이름을 여쭤봐야하겠다.

 

'고맙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할머님께서 가꾸신 작은 화단에 핀

나팔꽃 류의 꽃

 

'안녕'

 

 

사용자 삽입 이미지

 

두런 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그녀의 손과 발에 감사한다.

 

'고생하셨습니다'

 

 

 

2007/09/06

비오는 목요일

금호동인지, 옥수동인지의 너머에서

Pentax mesuper K50.4